결혼 후 처음 마주한 현실 — 생활비 5만 원
결혼 전 그 사람은 내게 푸근한 남자로 보였다.
오빠의 친구였고, 경제적으로도 한 가정을 책임질 만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결혼 후의 생활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결혼하면서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었다.
당시에는 여교사가 결혼 후 교직을 떠나는 일이 그리 낯설지 않던 시절이었다.
결혼 후 받은 월급을 시아버님께 보여드린 적이 있었다.
그저 보여드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시아버님은 그 돈을 그대로 가져가셨다.
달라고 하신 것도 아니었고, 내가 드리겠다고 말씀드린 것도 아니었다.
뜻밖의 일이었지만, 갓 시집온 새댁이었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일을 겪었다.
그렇게 내 월급은 사라졌고, 남편은 생활비를 주지 않았다.
시댁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내게 필요한 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남편에게 물었다.
"생활비는 왜 안 줘요?"
그러자 남편은 인상을 팍 찌푸리며 말했다.
"본가에 같이 사는데 무슨 돈이 들어?"
그러면서 5만 원을 건넸다.
그때의 남편 얼굴이 지금도 기억난다.
생활비를 달라는 아내의 말이 그토록 못마땅했던 것일까.
그러나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서운함이나 분노보다 훨씬 현실적인 것이었다.
'아, 이 남자하고 살려면 내가 돈을 벌러 나가야겠구나.'
결혼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나는 남편이 경제적으로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며 살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부부가 되어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서로의 생활을 책임지고 의논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생활의 시작부터 나는 생활비를 걱정해야 했다.
친구들이 남편에게 받는 생활비와 비교하면 내가 받는 돈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살림은 빠듯했고, 필요한 돈은 늘 부족했다.
다시 교직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 시절에는 복직이 쉽지 않았다.
복직하려면 오지나 시골로 가야 하는 형편이었다.
더구나 아이도 생겼다.
내게는 한 가지 분명한 생각이 있었다.
내 자식은 내 손으로 키우고 싶다.'
그 마음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길을 찾았다.
꽃꽂이 자격증을 취득하고 꽃꽂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나는 이제 꽃을 배우려는 사람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번 돈도 모두 생활비로 들어갔다.
남편이나 시댁에서 내 수입에 관여할 상황도 아니었다.
내가 번 돈을 보태도 생활비는 늘 모자랐으니까.
그렇게 나는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꾸리고, 틈틈이 꽃꽂이를 가르치며 살아갔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의 나는 참 젊었다.
결혼생활이 생각했던 것과 달라도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했다.
부족하면 벌어서 보태고, 어려우면 다른 방법을 찾아가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때는 그것이 내가 선택한 가정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황혼에 이른 지금, 지난날을 돌아보며 생각한다.
가정이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온전히 지켜질 수 있는 것일까.
부부가 함께 짊어져야 할 책임을 한 사람이 더 많이 감당하게 된다면,
그 무게는 세월이 흐를수록 어떻게 달라질까.
나는 그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의 살림을 꾸리고 내일의 아이를 키우는 데 마음을 쏟았다.
그렇게 내 결혼생활의 긴 세월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 시절의 나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흐른 뒤에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