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아침
그 사람은 오빠의 친구였다.
남자로서 푸근하게 보였고, 경제적으로도 한 가정을 책임질 만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빠 역시 괜찮은 친구라고 했다.
그러니 결혼을 결정하면서 그다지 큰 의심이나 걱정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친정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시댁으로 들어간 지 사흘쯤 되었을 때였다.
꼭두새벽에 잠이 깼다.
아직 잠이 덜 깬 채 낯선 방에 앉아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게 무슨 일들이 일어난 걸까. 어쩌다가 내가 이 낯선 방에 이렇게 앉아 있는 걸까.'
'이게 아닌데…….'
그러더니 느닷없이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흘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까지 남편과 다툰 것도 아니었고, 시댁에서 마음 상할 만한 일을 겪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결혼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새색시였을 뿐이다.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지금도 그날 아침의 기억은 희미해지지 않는다.
그때의 내가 무엇을 느꼈던 것인지 아직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낯선 환경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었을까.
아니면 아가씨에서 아내로, 한 집안의 며느리로 바뀐 자신의 처지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던 것일까.
어쩌면 결혼이라는 것이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일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에서
전혀 다른 세상으로 옮겨가는 일이었음을 그 순간 깨달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참으로 긴 세월이 흘렀다. 미래를 예견한 촉이었던가
두 딸의 엄마가 되었고, 아내이자 며느리로 살아왔다.
그 세월 속에는 웃음도 있었고 기쁨도 있었으며,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아픔도 있었다.
젊은 날에는 가정을 지키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어느덧 머리에는 흰서리가 내려앉고, 인생의 황혼이라 부르는 나이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오랜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혼이라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과 시간이 필요했던가.
이혼 후에도 끝나지 않은 일들이 있었고, 그 마지막을 정리하기까지 또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2026년 10월 13일.
법원의 강제집행을 통해 마침내 시골집을 되찾았다.
그날 내 마음은 의외로 담담했다.
분노도, 승리했다는 기쁨도 아니었다.
그저 긴 세월 동안 붙잡고 있던 무언가를 마침내 내려놓은 듯한 허탈함이 있었다.
그렇게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나니 문득 신혼 초의 그 꼭두새벽이 떠오른다.
'돌아가지 못할 강을 건넜구나.'
그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돌아보니, 인생에는 돌아갈 수 없는 길도 있지만 새롭게 걸어갈 수 있는 길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그 긴 이야기를 하나씩 기록해 보려 한다.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내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황혼에 이혼을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내가 겪은 세월이 작은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이혼은 결코 가볍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참고 견디는 것만이 언제나 정답인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고, 감당해야 할 현실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내 삶을 살아보려 한다.
맑은 공기와 물이 있는 시골집에서 낡은 곳을 하나씩 고치고, 텃밭을 가꾸고,
사람들과 교류하고 한 할머니로 일상을 공유하는 글을 쓰면서.
젊은 날의 내가 미처 누리지 못했던 자유와 평온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언젠가 누군가 내게 고목봉춘(枯木逢春)이라는 말을 해주었다.
마른 나무가 봄을 만난다는 뜻이다.
어쩌면 내 인생에도 이제 새로운 봄이 찾아오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고 생각했던 젊은 날의 나에게, 이제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다. 강을 건너고도 삶은 계속되었고, 너는 마침내 너 자신의 길을 찾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