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아침이었다.
전날에도 가까운 동네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고 돌아왔기에 하룻밤 자고 나면 좀 괜찮아지려니 했다.
그런데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세상이 핑 돌았다.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힘들 정도로 어지러웠다.
문득 친구가 생각났다.
가까운 친구이기도 하지만 병원장 부인이기도 한 친구였다.
급하게 전화를 걸어 증상을 이야기했더니 친구의 대답은 단호했다.
“당장 응급실로 들어와.”
병원에 도착해 검사를 해보니 헤모글로빈 수치가 8 정도였다.
정상 범위에 한참 못 미치는 심한 빈혈이라고 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해야 할 일을 해왔지만,
어쩌면 몸은 오래전부터 나에게 쉬어가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 남편은 병원 이사장이시다.
공교롭게도 토요일부터 부부가 해외 출장을 떠나야 했는데,
출국하면서도 내가 필요한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병원에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다고 했다.
빈혈과 어지럼증의 원인을 찾기 위해 위내시경부터 혈액검사, MRI, 뇌혈류검사, 뇌파검사까지 여러 검사가 이어졌다.

다행히 검사에서는 크게 걱정할 만한 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월요일 오후 퇴원이 결정되었다.
이제 병원비를 계산하고 집에 가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냥 퇴원하면 된다고 했다.
‘그건 아니지.’
아무리 친구의 병원이라 해도 검사도 많이 받았고 며칠을 입원했는데 그냥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직접 원무과 수납창구로 내려가 물었다.
그때 직원이 뜻밖의 말을 했다.
“이미 이사장님께서 전부 결제하셨습니다.”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았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혼자 동상이 되어버린 사람처럼 한동안 꼼짝하지 못했다.
병원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해외에 있으면서도 친구는 계속 문자를 보내왔다.
입원해 있는 동안 필요한 검사는 미루지 말고 모두 받아보라고 했다.
걱정하지 말고 몸부터 챙기라고 했다.
그 말만으로도 얼마나 든든했던지.
그런데 병원비까지 이미 계산해두었다니….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는 도저히 다 담을 수 없는 마음이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다른 친구들도 찾아왔다.
먹을 것을 사 들고 와서는 많이 먹어야 한다고, 어서 나아야 한다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했다.
퇴원하는 날에는 데리러 갈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는 친구도 있었다.
그 마음들을 하나씩 받고 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참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구나.
살다 보면 사람 때문에 마음을 다치기도 한다.
오랜 세월 쌓인 일들 때문에 속이 상하고, 억울하고, 지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내 곁에는 나를 걱정해주고,
아프다 하면 달려와주고,
밥은 먹었느냐 묻고,
병원비까지 몰래 계산해놓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힘든 일만 바라보느라 이런 귀한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퇴원하며 다시 한번 마음먹었다.
정신 차리자.
그리고 이제는 정말 내 몸을 돌보자.
친구들에게 받은 고마움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생각해보니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건강해지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쉬고,
치료도 잘 받고,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너무 소모하지 않는 것.
그래서 다음에 친구들을 만났을 때
“나 이제 괜찮아.”
하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보답일 것이다.
이번 입원은 내게 아픈 기억으로만 남지는 않을 것 같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지만,
내 곁에 얼마나 따뜻한 사람들이 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으니까.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오래 남지만,
사람에게 받은 사랑 또한 오래 남는다.
이제는 상처보다 사랑 쪽을 바라보며 살아야겠다.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건강해지자.
그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내가 갚아야 할 가장 큰 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