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는 하루 종일 책장을 정리했습니다.
이사를 앞두고 정리해야 할 것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손녀의 책이 들어설 공간을 비워 두고 싶었습니다.
내 책을 조금씩 옆으로 밀어 놓고 작은 빈자리를 만드는 일이 이상하게도 아쉽지 않았습니다.
한때는 아이들의 책을 사 모으고, 책가방을 챙기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제는 그 아이들의 아이를 위해 책장을 비워 두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세월은 참 빠릅니다.
젊은 날에는 나이 들어가는 것이 두렵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잃어가는 일이 아니라, 내 자리를 조금씩 다음 세대에게 내어 줄 줄 아는
마음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책장 한 칸을 비우면서도 마음은 오히려 더 채워졌습니다.
그 자리에 손녀의 그림책과 동화책이 꽂이고, 작은 손이 책을 꺼내 읽는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이제는 자식보다 손주를 먼저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지만, 저는 지금의 시간이 참 좋습니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누군가의 새로운 시간을 품어 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이 들어가는 일은 충분히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