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은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밤새도록 목감기로 뒤척이며 지새운 몸이 아침에 눈을 뜨니 오전 10시가 넘어가는 것이었다.
천천히 밥상을 차려본다.
목에 뜨끈한 국물로 적셔야 좀 나을 것 같아서 된장국을 끓여야 했다.
어제 친구가 농사지어 가져 온 상추를 데쳐 반은 나물로, 반은 시래깃국처럼 만들었다.
살짝 데친 상추를 올리브유에 볶고
홍콩식 마늘라유를 몇 방울 떨어뜨렸다.
상추된장국은 생각보다 쓴맛이 강했다.
그런데 상추는 쓴맛이 본래 있기도 하지만 오늘은 내 입맛 탓인지 더욱 쓴 것 같다.
상추 속의 락투카리움과 그 안에 들어있는 락투신, 락투코피크린 같은 신경 안정, 진정, 식욕조절처럼
쓴맛의 천연 성분인 줄 알지만 억지로 넘기는 상추된장국은 더 강하게 다가왔다.
다음에는 감자를 좀 넣든지 들깨가루를 넣든지 해야겠다.
콩고기로 매운 복음도 만들어 간단한 나 혼자만의 식사를 즐긴다.

그 쓴맛 때문이었을까 오래전 클래식 감상실의 공기까지 데려왔다.
라디오 FM방송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곡과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 흘러나오고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겉으로는 낭만적이고 풍성한데, 그 안에는 늘 외로움, 그리움, 깊은 고독 같은 그림자가 함께 흐르는 듯.
중학교 1학년 때 음악시간.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만 나오면 눈물을 글썽거리셨던 음악선생님은 음악 감상 시험으로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듣고 소제목을 맞추라는 어려운 과제를 내셨었다.
그 당시 우리는 몇이나 클래식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라디오도 귀했던 시절, 한 달에 약간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달아 놓은 스피커 속에서
연속방송극 중의 아름다운 연인의 사랑 이야기 배경 음악으로나 흘러나오는 것이 클래식이었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남진의 가슴 아프게 등 트로트 대중음악이 주류를 이루던 그 시절이었다.
처음으로 클래식이라는 장르도 알게 되고 그러다 양희은의 아침이슬, 트윈폴리오의 하얀 손수건,
이장희의 비의 나그네 등과 같은 포크송이 나오며 대학가를 휩쓸기도 했었다.
그때는 중학교부터 시험제여서 입학 후 변두리 지역에서 진학 한 나로서는 음악을 들으며 우시는
음악선생님 모습도, 서울에서 내려온 선화무용예술단이라는 단체도 모두 내게는 문화 충격 그 자체였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 충격이 있어 지금 현재는 콘서트를 찾고, 음악사를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고
듣던 안 듣던 하루 종일 라디오를 켜 놓는 할머니가 되었다.
내게는 클래식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 준 두 사람이 있다.
한 분은 중학교 때 음악선생님, 또 한 사람은 대학교 첫 미팅 파트너.ㅎㅎ
반세기도 지난 클래식 입문을 차차 소환시켜 보는 추억도 조만간 적어볼 까 한다.
정오의 느린 식사, 상추된장국의 쌉싸름함, 그리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곡에는
왠지 슬로 라이프를 하라는 뜻인 것 같다고 스스로 위안을 가져본다.
그래서인지 혼자가 되어 맞게 되는 늦은 정오의 한국식 브런치는 내게 "자유"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