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마다 장을 담근다.
1월에 장을 담궈 60일을 기다려 3월에 간장과 된장을 가른다. 하지만 된장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간장에게 내어준 맛을 다시 되찾기 위해 메주가루를 넣고, 고추씨가루를 더한다.
푹 삶아 곱게 간 콩물과 되직하게 지은 찰밥을 섞는다.
그리고 8년 동안 간수를 빼며 기다린 소금으로 마지막 간을 맞춘다.
장을 담그는 일은 늘 기다림이다. 시간은 손으로 만들 수 없기에 계절이 대신 일을 한다.
완성된 된장을 작은 용기에 나누어 담아 베란다에 차곡차곡 올려놓는다.
다시 숙성이라는 시간을 건네기 위해서다.
이 작은 용기들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오랜 친구들, 고마운 사람들, 내 삶을 함께 지나온 이들의
밥상으로 하나둘 떠날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정성을 들여 왜 나누느냐"라고 묻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누고 나면 내 것이 줄었다는 생각보다 마음이 더 넉넉해진다.
작은 된장 한 통이 누군가의 식탁에서 된장찌개가 되고, 그 안에 내 마음 한 숟갈도
함께 녹아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행복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
해마다 장을 담글 수 있는 건강이 있고, 함께 나눌 사람이 있고, 나눌 것이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삶이다.
된장은 시간이 빚어내고, 사람은 나눔이 빚어낸다는 말을 믿는다.
해마다 장을 담그며 나는 다시 배운다.
좋은 음식은 시간을 먹고 익지만,
좋은 사람은 나눔을 먹고 깊어진다는 것을.
올해도 작은 된장 한 통이 누군가의 밥상을 따뜻하게 해 준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