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는 주말이라 손녀가 하루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잠깐이라도 학원에 가면
딸도 숨을 돌릴 시간이 생길 텐데, 요즘은 혼자 아이를 돌보느라 많이 지쳐 보인다.
'내가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주면 좋겠다.'
그 마음 하나로 잠자리채를 챙겨 손녀와 집을 나섰다. 배낭에는 물 한 병, 휴지, 비닐 돗자리,
잠자리채 두 개, 그리고 과자 한 봉지. 제법 거창한 탐험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밖으로 나서자마자 현실이 우리를 맞았다. 기온은 40도에 가까웠고,
뜨거운 햇살은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그래도 아이에게 더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래된 벚나무에 붙은 매미를 발견하자 숲 속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쫓아다녔다.
나는 몇 걸음 따라가다 이내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손녀를 따라가는 대신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으며 연신 미소를 지었다.
문득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으면 벌써 증손주를 볼 나이.
마루 끝 평상에 앉아 아이들 뛰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즘은 결혼도 늦고 아이도 늦게 낳는 시대라, 늙은 할머니가 되어
손녀와 함께 매미를 잡으러 다닌다.하지만 나는 이 시간이 참 좋다.

딸이 결혼해 아이를 낳아 준 것도 고맙고, 손녀가 "할머니, 저기 매미!" 하며 내 손을 잡아끄는
그 순간들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숨이 차오를 만큼 더운 날이었지만, 손녀의 볼은 햇살에 발갛게 익어 있었고 웃음소리는
숲 속 가득 퍼져 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시원한 그늘을 만난 듯 평안해졌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행복의 크기를 더 깊이 알게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손녀가 어른이 되어 이 여름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할머니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뜨거운 여름날, 작은 잠자리채 하나를 들고 함께 뛰어다녔던 그 시간이
내 인생에 또 하나의 선물이었음을.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다오.
세상은 빨리 가려 하지 않아도 된단다.
오늘처럼 마음껏 뛰고, 마음껏 웃으며, 네 속도로 자라면 된다.
할머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너를 응원하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