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친정어머니는 추석을 전후로 아욱국을 자주 끓여 주셨다.
뽀얀 쌀뜨물을 받아 다시멸치 한 줌과 무 꽁다리, 대파 뿌리를 넣고 푹 끓여 육수를 내셨다.
거기에 된장을 풀고 고춧가루 한 술을 넣어 팔팔 끓이다가, 소쿠리에 넣고 박박 문질러
풋내와 거품을 뺀 아욱을 넣어 한소끔 더 끓이셨다.
“고추장을 넣으면 국물이 텁텁해진다.”
그러시며 어머니는 꼭 고추장 대신 고춧가루를 넣으셨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아욱국은 구수하면서도 끝맛이 칼칼하고 개운했다.
뜨끈한 국 한 그릇씩을 받아 들고 후후 불어가며 먹었던 그 맛.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나는 아직 그 국물 맛을 기억한다.
몸이 편찮으실 때도 그랬다.며칠 앓다가 조금이라도 기운을 차리시면
부엌으로 들어가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셨다.
그때는 그것이 그저 엄마가 해주는 밥인 줄만 알았다.
이제 내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안다.
아픈 몸으로도 자식 먹을 것을 챙기던 일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를.

오늘은 내가 아욱국을 끓인다.
솜씨 좋은 엄마의 손맛을 어찌 따라갈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해마다 된장과 간장을 직접 담그며 살다 보니 이제는 나만의 국물 맛도 조금은 생겼다.
쌀뜨물에 육수를 내고 된장을 풀고, 엄마처럼 고춧가루 한 술을 넣는다.
아욱을 박박 문질러 씻는 손끝에도 오래전 엄마의 모습이 겹쳐진다.
부드러운 아욱이 약간 미끄러지듯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한 숟갈 떠먹으니 그 옛날 엄마가 끓여주시던 국 생각이 난다.
오늘은 굴비 한 마리도 노릇하게 굽고, 고구마줄기김치와 깻잎김치,
콩장과 숙주나물무침을 꺼내 한 상을 차렸다.
급성 빈혈로 한동안 몸이 힘들었으니
이제는 내 몸도 잘 먹이고 잘 돌봐야 한다.
예전에는 엄마가 나를 위해 차려주던 밥상이었다면,
오늘은 내가 나를 위해 차리는 밥상이다.
따뜻한 아욱국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문득 생각한다.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많이 먹어라. 그래야 기운 차리지.”
하시며 국 한 숟갈이라도 더 떠주시지 않았을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유난히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내게는 아욱국이 그렇다.
아욱국이 그리운 것인지,
아욱국을 끓여주시던 엄마가 그리운 것인지.
아마도 나는 오늘
국 한 그릇을 끓이며 엄마를 만나고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