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손녀는 구구단을 외우고 있다. 외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교육방식이 한국과는 제법 다르다.
암기보다는 개념을 이해시키는 데 중점을 두는 수업이라 장점도 많지만,
한국의 선행학습에 익숙한 내 눈에는 조금 더디게 느껴질 때도 있다.
손녀는 토요 한글학교에 다니고, 집에서도 거의 한국말을 사용해서인지 한글은 아주 잘한다.
하지만 산수가 걱정되었는지 딸은 며칠 전 문방구에서 구구단표를 사 와 거실 벽에 붙여 놓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30여 년 전 초보 엄마였던 시절이 떠올랐다.
전후 세대였던 우리는 누가 시켜주지 않아도 스스로 해내야 했다.
갱지로 된 노트에 직접 적어가며 외웠다.
접어서 들고 다니며 외우다 보면 접힌 모서리가 너덜너덜해져 있기도 했지.
세월이 흘러 내 아이를 키울 때는 문방구에서 구구단표를 사서 벽에 붙여 놓고 외우게 했었다.
그리고 이제는 손녀의 구구단표가 우리 집 거실 벽에 붙어 있다.
순간 '세월이란 참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세대는 또 한 번 자연스럽게 이어져 간다.
요즘 젊은 부모들을 보면 배울 점도 많다.
특히 돈의 가치와 책임감을 아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가르친다.
용돈을 받으면 쓰임새에 따라 서랍을 나누어 보관하게 하고, 일정 금액이 모이면
직접 은행에 데려가 통장에 저축하며 숫자가 늘어나는 기쁨도 함께 배우게 한다.
참 현명한 교육이라는 생각이 든다.
방학을 맞아 우리 집에 온 손녀에게도 용돈을 건넸다.
그런데 손녀가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용돈 안 주셔도 돼요."
"왜?"
"할머니보다 제가 돈이 더 많아요."
순간 너무 귀여워 한참을 웃었다.
그러자 손녀가 다시 말했다.
"할머니 쓰세요."
아직은 세상을 보이는 그대로 믿고 말하는 그 천진한 마음.
그 순수한 한마디가 아침부터 할머니의 마음을 환하게 웃게 만들었다.
구구단표 한 장이 붙은 거실 벽에는 숫자만 적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도 이어지는 가족의 사랑과, 또 하나의 세대가 자라나는 시간이 함께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