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서울행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개인적인 것들이 많기도 했지만 마침 출장 온 사위와의 만남도 있었으니...
다행히 모든 일들은 무사히 끝났다.
일을 마친 뒤 문득 생각했다.
' 내일은 나를 위해 조금 걸어보자.'
숙소로 걷는 발걸음이 갑자기 경쾌해진다.
이튿날 아침 사위와 만나 간단하게 베이글과 커피로 식사를 하고,
저녁에 만나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코스요리를 먹자고 예약해 두었다며
오후에 다시 만나기로.. 고맙기도 하지...
외국에서 들어와 그 바쁜 일과 중에도 장모를 오라 하여
비행기티켓과 호텔을 잡고, 만찬을 예약했다고 하니 말이다.
삼청동 미술관으로 갈까 하다가 문득 내 눈앞에
세종문화 미술회관 광고판에 '인상주의를 넘어'라는 커다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르누아르, 드가, 고흐, 마티스 피카소와 같은 거장들의 작품이
미국 디트로이트 미술관에서 가져온 흔히 못 본 작품들이었다.
경로 우대로 반액의 입장료를 사서 들어가며 나이 먹는 것도 괜찮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3시간 정도 천천히 돌며 사진도 찍고, 쉬엄쉬엄 보고 나오니 민생고를 해결해야 했다.
뒷문으로 나가니 먹자골목. 혼자서 메밀소바를 시켜 시원하게 먹고서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정동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정동교회와 이화여고의 오래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오래 전의 내가 떠올랐다.
젊은 시절, 서울로 진학하고 싶었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고, 더 많은 사물에 관심도 많았었지.
하지만 현실은 늘 마음 같지 않았다.
꿈은 접어 두어야 했고, 나는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했다.
그런데 칠순이 넘은 지금, 난 서울 한복판을 혼자 걷고 있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었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쉬고 싶으면 쉬었다.
문득 웃슴이 났다.
젊은 날 이루지 못한 꿈이 꼭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조금 늦게 찾아왔을 뿐이었다.

저녁에는 출장 중인 사위와 함께 식사를 했다.
좋은 호텔과 미슐랭 레스토랑까지 준비해 준 사위의 따뜻한 배려에 마음이 뭉클했다.
생각해 보면 이번 서울행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오래된 아쉬움을 다독이며, 지금의 삶에 감사하는 여행이었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
창밖으로 스쳐가는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며 조용히 되뇌어 본다.
"그래, 이제 괜찮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내가 살아갈 곳으로 돌아간다.
정동길의 오래된 나무들은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길을 걷는 동안 나는 알게 되었다.
'인생에는 너무 늦은 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늦게 찾아오는 꿈이 있을 뿐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