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기예보와 폰에 뜬 안전 재해 문자가 비바람과 안전 주의를 말해주었지만
길을 나서려고 미리 계획한 이들에게는 떠나야 하는 이유는 이미 작정했고,
오후에는 개인다는 기상청의 예고가 "그래~ 떠나보자"하는 용기를 가지게 한다.
그런데 밤새도록 베란다창을 흔들며 두드려대는 비바람은 길 떠날 나를 못 가게 하 듯
무섭게 두드려대고 있다.
약속은 무조건 지키기 위한 것이라 믿고 있는 나 이기에 일어나 준비하고 나섰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새벽 시간.
이리 저리 흩날리는 나뭇잎들과 꺾어진 가지들이 나뒹굴고 있는 도로만이 나를 측은하게 보는 듯.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는 온다는 신호가 뜨지 않고, 시간만 간다.
카카오택시를 불러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30분이나 일찍 도착.
그 시간에도 비바람 피할 수 있는 지하철역은 주민들의 산책 장소.
또한 길 떠나는 사람들의 약속 장소.
그렇게 우리 일행은 남해로 출발.
가는 도중에 유람선 사무실에서의 전화가 오후 2시 배가 출발한다고 알려온다.
갑자기 스케줄을 바꿔 용문사로 갔다.
대웅전 법당으로 가서 천수경 기도를 하며 마음을 가라앉혀본다.



다시 차를 몰아 남해섬을 반바퀴 정도 돌다 보니 두곡해수욕장이 언제 그랬냐는 듯
새파란 하늘 아래 환한 자갈과 모래사장이 얼굴을 내민다.
모두 탄성을 지르며 달려간다.
여기저기 젊은 이들은 텐트를 치기 시작하기도...
다시 30분쯤 달려 이동면에 있는 멸치쌈밥으로 이른 점심을 먹고
노량부두로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
오전까지의 그 날씨에도 유람선을 타려고 모인 사람들은 왜 그리 많은지...
예로부터 음주가무에 능한 민족이지만 관광에도 진심인 대한민국 사람들.

남해대교와 노량대교 아래를 지나 하동 화력 발전소 앞을 지나
이순신장군께서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라고 하셨던 관음포를 지날 때는
1592년에 왜군이 쳐들어 왔을 때 이곳이 얼마나 치열했나 가늠키 어려울 정도였지만
그래도 오전까지 풍랑이 조금 남아 배가 흔들릴 때는
그 당시 우리 선조들은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에 숙연해지며
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했다.
"조상님들이 계셔서 지켜주셨기에 오늘 이리도 편안하게 살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라고.
광양 제철을 지나 다시 유람선 부두로 돌아오는 2시간이
캐나다 천섬 유람선 이후 간만의 바다 유람이었네.

다시 차를 타고 산청을 향해 금수암으로 달린다.
어머니스님께서 병환이 생겨 모시고자 따님스님이신 대안스님께서
온 정성을 기울여 만드는 사찰 음식이란다.
진주 통영 고속도로를 타고 생초 IC에서 내려 성철스님 생가 동네를 옆을 지나 찾아 간
금수암의 모습은 참 단아한 느낌의 정원과 대중공양간이 눈앞에 펼쳐지며 현대식 건물이지만
거슬리지 않는 "어서 오세요~" 하는 듯했다.
연잎밥정식을 시켰는데 서빙하는 보살님들 얼굴이 어찌나 맑고 아름답기까지 하던지...
8가지의 찬과 연잎밥, 국으로 7첩 반상이었다.
콩고기로 대신하고 고추, 마부각, 참나물 숙채, 연근샐러드, 메밀묵,
표고버섯과 색색의 파프리카채를 볶아 산 밀전병, 가죽나물 전, 그리고 열무김치.
국은 섬섬한 근대된장국이었다
다 먹고 난 뒤 어찌나 속이 편안하던지 마치 보약 한 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오랫동안 마음을 짓누르던 일들이 하나 둘 정리되어서인지
비 내리는 풍경마저 가볍게 느껴진 여행이었다.
그렇다고 인생의 짐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고해의 짐보다
길가의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올 만큼 조금 여유로워진 느낌이지 싶다.
새벽비를 뚫고 다녀온 남해와 산청은 여행지라기보다
내 마음이 쉬어 간 곳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