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사이 나는 평생 기억에 남을 음악의 시간을 선물 받았다.
부산콘서트홀 개관 1주년을 기념하는 연주회에서 이틀에 걸쳐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과
말러의 교향곡 제3번 전곡을 들었다.

한때 부산은 '문화예술의 불모지'라는 말을 듣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표현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콘서트홀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무대 뒤를 가득 메운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이었다.
세계 유수의 공연장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웅장한 모습은 연주가 시작되기 전부터
관객의 마음을 압도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청중의 태도였다.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울 만큼 집중하는 관객들,
마지막 음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박수를 아끼는 성숙한 모습에서 부산의 문화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첫날 연주된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은 음악사의 기념비 같은 작품이었다.
특히 마지막 4악장에서 울려 퍼지는 **환희의 송가**는 인간은 서로 형제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오케스트라와 100명이 넘는 합창단, 그리고 4명의 성악가가 만들어낸 거대한 울림은
객석 전체를 하나의 호흡으로 묶어 주었다
둘째 날의 말러 교향곡 제3번은 '자연과 생명의 교향곡'이라 불린다.
장장 100분이 넘는 이 작품은 대지와 꽃, 동물, 인간, 천사, 그리고 신에 대한 사랑에 이르기까지
우주와 생명의 탄생을 거대한 음악으로 그려낸다.
때로는 장엄하게, 때로는 한없이 따뜻하게 흐르는 선율은 우리가 자연의 일부임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지휘자 정명훈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그 순간은 단순한 연주가 아니라 한 편의 드라마였다.
늘 음반으로 들어왔던 곡이지만, 공연장에서 직접 마주한 감동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다.

초여름의 이틀.
베토벤이 노래한 인류애와 말러가 들려준 생명의 찬가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오래도록 간직할 축복이었다.
"인생에도 교향곡이 있다면,고통의 악장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초여름이 가르쳐 주었다.말러는 생명의 경이로움을,베토벤은 인간에 대한
희망을 노래했다.그리고 나 역시 긴 터널 끝에서 조금씩 새로운 악장을 써 내려가고 있다."
음악은 끝났지만, 그날의 마지막 화음과 울림은 아직도 마음속에서 조용히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