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 년 전 여중 시절.
모든 것이 궁금하고 의아스럽고 뭔지 모르지만 희망과 꿈이 넘치던 시절.
음악시험으로 과제를 받은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클래식을 왜 들어야 하는지, 왜 시험까지 내는지 음악선생님이 미워지기까지 했었다.
무턱대고 들어보니 모르겠고, LP 뒷면을 봐도 영어로 된 소제목이 어렵고
그 제목을 어째라고 하는 반발마저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었다.
상급학교로 진학을 하면서 점차 유럽에서 시작된 음악의 한 장르라는 것도 알게 되고
어릴 때부터 불렀던 동요인 줄 알았던 곡들도 클래식의 일부분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친근하게 내 마음이 열려 온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에 대해 자세히 파헤쳐 봐야겠다는...

이 음악은 단순한 피아노 모음곡이 아니다.
1873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친구인 화가이자 건축가인 빅토르 하르트만의
유작전을 둘러보며 받은 인상을 음악으로 옮긴 작품이다.
이 곡의 핵심은'그림을 보는 사람'인 무소르그스키 자신입니다.
반복되는 프롬나드(Promenade)는 전시장을 걸어 다니는 그의 발걸음이며,
각 그림은 하나의 인생 풍경처럼 펼쳐진다.
1. 프롬나드( Promenade )
당당한 러시아풍 선율이 울려 퍼진다
관광객이 전시장으로 들어서며 천천히 그림들을 둘러본다.
훗날 라벨의 편곡에서 보면 금관악기가 웅장하게 노래하는데,
마치 넓은 전시장에 첫발을 내딛는 느낌을 준다.
이 선율은 매번 등장하지만 조금씩 변한다.
이유는 그림을 볼 때마다 관람자의 마음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2. 난쟁이 ( Gnomus )
기괴한 난쟁이가 절뚝거리며 움직인다.
불규칙한 리듬과 갑작스러운 강약변화가 매우 불안하다.
삶 속의 공포, 왜곡된 욕망, 인간 내면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듯하다.
처음 들으면 다소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다.
3. 프롬나드
두 번째 그림을 보러 가는 발걸음이다.
조금 전의 불안감이 남아있지만 조금은 차분하다.
4. 고성 ( II Vecchio Castello )
중세 성 앞에서 음유시인이 노래한다.
라벨은 알토 색소폰을 사용해 쓸쓸한 노래를 들려준다.
황혼 무렵의 성벽, 지나간 사랑, 사라진 시대에 대한 향수처럼 들린다.
브람스의 늦가을 정서와도 통하는 깊은 고독이 있다.
5. 프롬나드
잠시 걸으며 생각에 잠긴다.
아까보다 조금 더 내면적인 분위기다.
6. 튈르리정원( Tuileries )
파리의 공원에서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뛰어논다.
짧고 빠른 음형들이 마치 아이들의 수다 같다.
이 곡 전체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가벼운 순간 중 하나다.
7. 비들로( Bydlo )
거대한 소들이 끄는 무거운 수레.
멀리서 점점 다가오다가 눈앞을 지나 다시 멀어진다.
삶의 짐을 묵묵히 끌고 가는 농민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악장을 들을 때면 난 늘 "인생의 무게"가 생각난다.
아마도 70년 이상을 살아오며 겪은 세월도 이런 음악 안에 담겨 있으리라.
8. 프롬나드
이제 관람자는 조금 지쳐갈 시점.
처음의 활기는 줄고 사색이 깊어질 때
9. 껍질 속 병아리들의 발레 ( Ballet of the Unhatched Chicks )
아직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한 채 뒤뚱거리는 병아리들.
피콜로와 목관악기가 귀엽게 지저귄다.
무소르그스키 특유의 유머가 가득하다.
10.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슈밀레 ( Samuel Goldenberg and Schmuyle )
부유한 유대인과 가난한 유대인의 대화.
무거운 저음 선율은 부자,
불안하게 떨리는 트럼펫은 가난한 사람을 표현한다.
인간사회의 계층을 음악으로 표현한 장면이다.
11. 리모쥬의 시장 ( Limoges)
시끌벅적하게 이야기하는 프랑스 시장의 여인들.
빠르게 오가는 음들이 마치 시장의 소음을 그대로 옮긴 것 같다.
웃슴과 소문이 가득한 활기 찬 공간.
12. 카타콤( Catacombs )
지하 묘지
무거운 화음들이 울리며 차가운 돌벽의 메아리를 그린다.
친구 하르트만의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13. 죽은 자와 함께, 죽은 언어로( Cum mortuis in lingua mortua )
이 작품 전체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다.
프롬나드 선율이 느리고 신비롭게 변형되어 나타난다.
이승의 무소르그스키와 저승의 하르트만이 조용히 대화하는 장면 같다
이 부분에서 깊은 울림을 받는다.
14. 바바야가 (The Hut on Hen's Legs- Baba Yaga )
러시아 전설의 마녀 바바야가가 빗자루를 타고 날아간다.
광폭한 에너지와 질주감이 압도적이다.
이제 전시회의 분위기는 현실을 넘어 신화의 세계로 들어간다.
15. 키예프의 대문 (The Great Gate of Kyiv )
장엄한 종소리.
웅대한 금관.
러시아 정교회의 찬가를 떠올리게 하는 화성.
모든 여정의 종착점이다.
라벨의 편곡에서는 오케스트라가 가진 모든 색채가 폭발한다.
개인의 슬픔으로 시작한 작품이 인류적 승화로 끝나는 순간이다.
평소 즐겨 듣는 바흐의 샤콘느나 브람스의 늦은 작품들이 "삶을 관조하는 음악"이라면
전람회의 그림은 "삶의 전시장"이다.
기괴함, 고독, 아이들 웃슴 소리, 노동의 무게, 죽음이 있고 마지막에는 거대한 빛이 있다.
칠순이 지나 인생을 돌아보는 이쯤에 들으면 단순한 관현악곡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생을 천천히 걸어가는 자서전처럼 들리기도 한다.
13번 '죽은 자와 함께, 죽은 언어로'와 15번 '키예프의 대문'은 슬픔을 지나 평온에 이르는
긴 인생의 시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 음악 선생님께서는 살아온 연륜이 있으셨기에 마치 제자들에게
앞으로의 너희들 삶도 녹녹지 않을 것임을 미리 알려주신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제자도 나이가 들어 과제물로 들었던 음악을 들으며
" 세상을 향해 외칠 필요가 없다. 조용히 음악을 통해 자신과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함을 느낀다
아무튼 교육의 결과물이 60년을 훌쩍 넘고 깨닫게 해 주신 은사님께
고개 숙여 감사함을 전해드리고 싶다.
👌 단어의 이해.
"프롬나드(Promenade )"는 프랑스어로 '산책, 거닐기'라는 뜻이다.
음악에서는 크게 두 가지 의로 쓰이는 매력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 하나는 곡 사이사이에 반복해서 나오는 주제음악의 제목을 말한다
1."전람회의 그림"에서 그림을 하나씩 찾아갈 때마다
천천히 걸어 이동하는 작곡가 자신의 시각적인 발걸음을 음악으로 묘사한 것이고,
2. 감정의 연결고리- 새로운 그림을 맞이하기 전 마음을 가다듬는 징검다리 역할이며,
3. 변화하는 선율-똑같은 선율 같지만, 직전에 본 그림의 분위기에 다라 때로는 엄숙하게,
때로는 쓸쓸하거나 경쾌하게 조표와 분위기가 계속 바뀌기도 하는 하는 것.
#두 번째는 프롬나드 콘서트: 격식을 벗어 난 자유로운 음악회
1. 걸어 다니며 듣는 음악회- 18~19세기 런던의 야외 정원에서 시작된 형태로
'산책하듯 거닐며' 편안하게 듣는 음악회에서 유래.
2. 대중적인 클래식의 시작을 의미-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프롬즈' 축제; 좌석을 비워두고,
관객들이 저렴한 입장료로 서거나 기대어 자유롭게 즐겨도 되는 음악회인데
'프롬나더스(Promenaders)'라는 구역이 전통으로 남아있다.
다시 말해 음악에서 프롬나드는 갤러리에서 미술품 사이를 거니는 "예술적인 산책의 발걸음"이자
클래식을 거창하게 무겁게 대하지 않고 삶 속에서 편안하게 즐기는 "자유로운 감상 방식"을 뜻한다.